만드는 비용이 0이 되면, 무엇으로 차이를 내는가
공급이 넘치는 시장에서 가치가 옮겨 가는 곳
AI가 코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비용이 빠르게 0에 가까워지고 있다. 몇 주씩 걸리던 기능이 하루 안에 나오기도 하고, 개발을 배워 본 적 없는 사람이 며칠 만에 제품을 내놓는다.
이 변화를 두고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면, 무엇으로 이기는가. 이 글의 답은 하나다. 만드는 비용이 0이 되면 돈과 힘은 흔해진 쪽을 떠나 여전히 귀한 쪽으로 옮겨 간다. 소프트웨어에서 그 귀한 쪽은 사용자의 관심, 신뢰, 그리고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판단이다.
이 주장을 세 갈래로 살펴본다. 비슷한 일이 먼저 일어난 인터넷의 역사, 가치가 옮겨 가는 방향을 설명하는 경제 원리, 그리고 경쟁 우위를 일곱 가지로 나눈 전략 틀이다. 마지막에는 작은 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한다.

공급이 넘치면, 가치는 수요를 모은 쪽으로 간다
만드는 비용이 무너진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인터넷은 디지털 콘텐츠를 퍼뜨리는 비용을 0으로 만들었다. 신문사는 오랫동안 인쇄소와 배달망을 가진 덕분에 독자와 광고주 사이를 사실상 독점했다. 인터넷이 그 배달망을 쓸모없게 만들자 누구나 글을 써서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됐다.
공급은 폭발했다. 그런데 그 이익을 가장 크게 가져간 쪽은 콘텐츠를 만든 쪽이 아니었다. 넘쳐 나는 콘텐츠 사이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 주는 쪽, 즉 검색과 피드였다.
벤 톰프슨은 2015년 이 현상을 「애그리게이션 이론(Aggregation Theory)」으로 정리했다.[1] 그는 시장을 공급자, 유통자, 사용자의 세 부분으로 나눈다. 인터넷이 유통 비용을 없애자, 유통을 쥐고 있던 기존 강자는 힘을 잃었다. 그 자리는 사용자와의 관계를 직접 가진 쪽, 그가 애그리게이터라고 부른 쪽이 차지했다. 공급자는 그 아래에서 서로 바꿔 끼울 수 있는 존재, 즉 상품이 됐다.
가장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애그리게이터가 이긴다.
톰프슨은 애그리게이터가 한번 앞서면 계속 앞서는 이유도 설명한다. 디지털에서는 사용자 한 명을 더 받는 비용이 거의 0이다. 그래서 더 좋은 경험이 더 많은 사용자를 부르고, 사용자가 많아지면 공급자가 몰려와 경험이 다시 좋아진다. 이 선순환은 한번 돌기 시작하면 뒤에서 따라잡기 어렵다.
AI가 지금 소프트웨어에 하고 있는 일이 이와 닮았다. 인터넷이 유통 비용을 없앴다면, AI는 제작 비용을 없애고 있다. 만드는 쪽이 흔해지면 가치는 사용자를 모은 쪽으로 이동한다. 같은 문제를 푸는 제품이 수십 개가 되는 순간, 사용자의 눈길을 먼저 받는 쪽이 유리해진다.

한쪽이 싸지면, 옆에 붙은 것이 비싸진다
이 이동 뒤에는 오래된 경제 원리가 있다. 조엘 스폴스키는 2002년 글 「Strategy Letter V」에서 보완재 이야기를 꺼냈다.[2] 보완재는 함께 써야 가치가 나는 물건이다. 자동차와 기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처럼.
다른 조건이 같다면, 어떤 제품의 수요는 그 보완재의 가격이 내려갈 때 늘어난다.
스폴스키가 드는 예가 이 원리를 잘 보여 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 PC용 운영체제를 IBM에만 주지 않고 컴팩 같은 호환 PC 제조사에도 팔았다. 호환 PC가 늘어 하드웨어 값이 내려가자 PC가 더 많이 팔렸고, 그만큼 운영체제도 더 많이 팔렸다. 넷스케이프는 브라우저를 무료로 나눠 주고 서버를 팔려 했다. 둘 다 보완재를 싸게 만들어 자기 제품의 수요를 키운 경우다.
그래서 똑똑한 회사는 자기 제품의 보완재를 일부러 싸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이 원리를 지금 상황에 대어 보면 방향이 보인다. 코드가 싸지면, 코드와 함께 있어야 가치가 생기는 것들의 몸값이 오른다. 사용자에게 닿는 유통, 믿고 쓸 이유가 되는 신뢰, 쓸수록 쌓이는 데이터가 그렇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도 비슷한 법칙을 남겼다. 그는 『The Innovator's Solution』에서 「매력적 이익 보존의 법칙」을 제시했다.[3] 가치사슬의 한 단계가 표준화되어 흔해지면 그 단계의 이익은 사라진다. 하지만 이익은 증발하지 않고, 아직 흔해지지 않은 이웃 단계로 옮겨 간다. PC 산업에서 조립 PC가 흔해지자 이익이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운영체제로 몰린 일이 이 법칙을 설명할 때 자주 드는 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이 흔해지는 지금, 이익은 어디로 옮겨 갈까. 두 원리를 겹치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만드는 일의 바깥, 사용자와 맞닿은 쪽이다.
어떤 해자가 남는가: 7가지 힘으로 보기
해자는 원래 성 둘레에 파 놓은 물길이다. 사업에서는 경쟁자가 쉽게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주는 벽을 뜻한다. 해밀턴 헬머는 『7 Powers』에서 오래가는 경쟁 우위를 일곱 가지로 나눴다.[4]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카운터 포지셔닝, 전환 비용, 브랜드, 독점 자원, 프로세스 파워다.
헬머의 틀에서 힘이 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 그리고 경쟁자가 그 이익을 따라오지 못하게 막는 장벽이다. AI는 이 중 장벽 쪽을 크게 흔든다. 아래 구분은 헬머의 일곱 가지 힘에 AI의 영향을 겹쳐 본 이 글의 해석이다.

약해지는 힘: 프로세스 파워와 규모의 경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프로세스 파워다. 남보다 잘 만드는 노하우, 손에 익은 개발 방식은 오랫동안 쉽게 베낄 수 없는 장벽이었다. 그 노하우의 상당 부분을 이제 모델이 대신한다. 규모의 경제도 만드는 쪽에서는 약해진다. 개발에 드는 고정비가 줄면, 덩치를 키워 단위 비용을 낮추던 이점도 줄어든다.
물론 AI 모델 자체를 만드는 회사에게는 규모의 경제가 오히려 커진다. 막대한 계산 자원과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모델 위에서 제품을 만드는 쪽의 이야기다.
흔들리는 힘: 전환 비용
전환 비용은 남지만 예전만 못하다. 사용자가 다른 제품으로 쉽게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데이터를 옮기고, 다시 설정하고, 새로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AI는 이 귀찮은 일을 점점 대신해 준다. 옮기는 비용이 줄면 붙잡아 두는 힘도 줄어든다.
남거나 강해지는 힘: 네트워크, 브랜드, 독점 자원, 카운터 포지셔닝
네트워크 효과는 기능을 베껴도 따라오지 않는다. 사용자가 늘수록 모두에게 더 좋아지는 구조는 코드가 아니라 사람이 모여야 생긴다.
브랜드는 오히려 강해진다. 같은 문제를 푸는 제품이 수십 개면, 사용자는 처음 보는 제품을 하나하나 비교하는 대신 믿을 수 있는 이름을 고른다. 선택지가 늘수록 믿음의 값이 오른다.
독점 자원은 모양을 바꾼다. 예전에는 특허나 핵심 인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남이 갖지 못한 데이터, 오래 쌓은 사용자 관계, 이미 확보한 유통 채널이 그 자리에 선다.
카운터 포지셔닝은 작은 팀에게 가장 쓸모 있는 힘이다. 기존 강자가 따라 하면 자기 사업을 깎아 먹게 되는 방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 수만큼 돈을 받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AI가 사람 몫의 일을 대신해 사용자 수가 줄어드는 모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새로 시작하는 쪽은 그런 부담 없이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수요는 늘어날까: 제번스의 역설
공급이 이렇게 늘면 수요는 따라올까.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흥미로운 관찰을 남겼다.[5] 증기기관이 석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되자, 석탄 소비가 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늘었다. 쓰는 비용이 내려가자 석탄을 쓸 곳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만드는 비용이 내려가면, 예전에는 만들 가치가 없던 작은 문제까지 소프트웨어로 풀린다. 한 사람을 위한 도구, 한 팀만 쓰는 자동화 같은 것들이다. 세상에 있는 소프트웨어의 양은 크게 늘 것이다.
다만 전체가 커지는 것과 내 몫이 커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제품 수가 수요보다 빨리 늘면, 제품 하나가 받는 관심은 줄어든다. 파이가 커져도 조각은 작아질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앞의 결론으로 돌아온다. 관심을 모으는 쪽이 커진 파이를 가져간다.
이 변화는 긴 꼬리 모양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소수의 큰 제품이 앞쪽을 차지하고, 그 뒤로 아주 작은 제품들이 끝없이 늘어선다. 작은 팀은 대부분 이 꼬리 쪽에서 시작한다. 꼬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넓게 팔리는 것보다, 좁은 사용자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팀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이 흐름을 작은 팀이나 혼자 일하는 사람의 실무로 옮기면 네 가지로 정리된다.
1. 만들기 전에 수요를 먼저 모은다
애그리게이터가 수요를 모아 이겼듯, 작은 팀도 수요를 먼저 모아야 한다. 제품보다 글, 영상, 커뮤니티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관심이 확인된 문제만 만든다. 유통을 출시 뒤로 미루면, 다 만든 다음에야 닿을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만들려는 제품에 관한 글이나 짧은 영상을 먼저 올리고 반응이 붙는지 본다. 대기 명단을 열어 이메일을 받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반응했다면, 적어도 그 문제가 실제로 있다는 신호다. 반응이 없다면 만들기 전에 알게 된 것이니 그것도 이득이다.
2. 좁은 곳에서 신뢰를 먼저 쌓는다
브랜드는 넓게 알려지는 데서가 아니라 좁은 곳에서 깊게 믿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특정 직군, 특정 문제에서 「이 일은 이 팀」이라는 인식을 먼저 얻는 편이 빠르다. 좁은 시장에서 얻은 믿음은 옆 시장으로 넓혀 갈 때 그대로 따라온다.
3. 쓸수록 쌓이는 구조로 설계한다
기능은 베낄 수 있어도 쌓인 것은 베낄 수 없다. 사용자가 남긴 기록, 사용자끼리의 연결, 쓰면서 나아지는 결과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두꺼워지는 것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넣는다. 오늘 출시한 경쟁 제품은 같은 기능을 가질 수 있어도, 같은 이력을 가질 수는 없다.
추천이 핵심인 서비스를 예로 들면, 사용자가 쓸수록 쌓인 기록이 더 정확한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더 많은 사용을 부른다. 경쟁자가 같은 추천 기능을 하루 만에 만들어도, 그 기록까지 하루 만에 쌓을 수는 없다.
4. 기존 강자가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들어간다
큰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진다. 그들이 따라 하면 손해를 보는 가격 모델, 전달 방식, 고객층을 고른다. 작은 팀의 약점인 작은 규모가 여기서는 장점이 된다. 지킬 것이 없는 쪽이 가장 빨리 바꿀 수 있다.
쓴 만큼이 아니라 해결한 결과만큼 돈을 받는 방식, 한 직군만을 위해 좁고 깊게 만든 제품, 사람이 하던 일을 통째로 맡아 주는 서비스가 그런 예다. 모두 기존 강자의 매출 구조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방식이라, 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만들기 전에 던질 질문을 셋으로 줄이면 이렇다.
이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닿는가?
경쟁자가 일주일 만에 기능을 베껴도,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기존 강자가 이 방식을 따라 하면 무엇을 잃는가?
정리하며
인터넷이 유통 비용을 없앴을 때 가치는 수요를 모은 쪽으로 갔다. 한쪽이 싸지면 옆에 붙은 것이 비싸지고, 흔해진 단계의 이익은 이웃한 단계로 옮겨 간다. AI가 제작 비용을 없애는 지금, 같은 일이 소프트웨어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술과 실행 노하우는 해자의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 자리를 관심과 신뢰, 쌓이는 관계, 그리고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판단이 채운다.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 쓰던 시간의 일부를, 이제는 닿는 법을 배우는 데 써야 할 때다.
출처
- Aggregation Theory (Ben Thompson, Stratechery, 2015-07-21) ↩
- Strategy Letter V (Joel Spolsky, Joel on Software, 2002-06-12) ↩
- 『The Innovator's Solution』 (매력적 이익 보존의 법칙) (Clayton M. Christensen, Michael E. Raynor,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3) ↩
- 『7 Powers: The Foundations of Business Strategy』 (Hamilton Helmer, 2016) ↩
- 『The Coal Question』 (William Stanley Jevons, 1865) ↩
